약 230만 개의 돌을 쌓아 아파트 50층 높이의 산을 만든다면, 지금의 크레인 없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자의 대피라미드는 4,500년 넘게 이 질문을 던져 왔습니다. 외계인이나 잃어버린 고대 문명을 끌어들이는 이야기도 많지만, 지난 수십 년 동안 고고학은 채석장, 일꾼 마을, 파피루스 기록, 옛 물길 같은 실제 증거를 하나씩 찾아냈습니다. 연재 「세계의 불가사의」 네 번째 편은 그 증거들을 따라가며, 밝혀진 것과 아직 모르는 것을 나눠 봅니다. 피라미드 지대를 여행지로 본 이야기는 기자의 피라미드 편에 있습니다.
핵심 요약
- 기자의 대피라미드는 기원전 2560년 무렵 쿠푸왕 때 지어졌으며, 평균 약 2.5톤짜리 돌 약 230만 개로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 2013년 홍해 연안 와디 알자르프에서 발견된 「메레르의 일지」는 투라의 고운 석회암을 배로 기자까지 실어 나른 기록으로, 피라미드 건설을 직접 다룬 가장 오래된 문서입니다.
- 돌을 들어 올린 경사로의 형태는 직선, 지그재그, 나선, 내부 경사로 등 여러 가설이 있지만 결정적인 증거는 아직 없습니다.
연재 「세계의 불가사의」 전 10편
- 1. 7대 불가사의, 세 가지 목록
- 2. 사라진 고대 7대 불가사의
- 3. 미스터리 서클
- 4. 피라미드는 어떻게 지었나 (지금 보는 글)
- 5. 나스카 지상화 (공개 예정)
- 6. 이스터섬 모아이 (공개 예정)
- 7. 스톤헨지 (공개 예정)
- 8. 버뮤다 삼각지대 (공개 예정)
- 9. 아틀란티스 (공개 예정)
- 10. 보이니치 필사본 (공개 예정)
대피라미드를 숫자로 보면
| 항목 | 내용 |
|---|---|
| 주인 | 고왕국 제4왕조 쿠푸왕 (그리스식 이름 케옵스) |
| 완공 시기 | 기원전 2560년 무렵 (연구에 따라 수십 년 차이) |
| 원래 높이 | 약 146.6m. 꼭대기와 겉 마감돌이 사라져 지금은 약 138m |
| 밑변 한 변 | 약 230m |
| 돌의 수 | 약 230만 개로 추정 |
| 돌 한 개 무게 | 평균 약 2.5톤. 내부 「왕의 방」 천장의 화강암 들보는 수십 톤 |
| 건설 기간 | 약 20년 남짓으로 보는 견해가 많음 |
| 세계유산 | 1979년 「멤피스와 그 묘지 유적: 기자에서 다슈르까지의 피라미드 지대」 |
대피라미드는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가운데 지금까지 남은 유일한 건축물입니다. 나머지 여섯이 어떻게 사라졌는지는 사라진 고대 7대 불가사의 편을 보세요.
돌은 어디서 왔나: 세 군데 채석장
| 돌 | 채석장 | 쓰인 곳 | 운반 |
|---|---|---|---|
| 거친 석회암 | 기자 고원 바로 옆 | 피라미드 몸체 대부분 | 수백 m 거리. 썰매로 끌어옴 |
| 고운 흰 석회암 | 나일강 건너편 투라 (지금의 카이로 남쪽) | 겉면 마감돌. 매끈하게 빛났다고 전함 | 배로 강과 운하를 따라 운반 |
| 붉은 화강암 | 남쪽으로 800km 넘게 떨어진 아스완 | 왕의 방 벽과 천장 들보 | 나일강 흐름을 따라 배로 운반 |
몸체의 돌이 바로 옆에서 나왔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230만 개 대부분은 먼 곳에서 온 것이 아니라 공사 현장 옆을 깎아 낸 돌입니다. 지금도 기자 고원 남쪽에는 거대한 채석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메레르의 일지: 4,500년 전 작업 일지
2013년, 피에르 탈레가 이끄는 프랑스·이집트 조사단이 홍해 연안의 옛 항구 와디 알자르프에서 파피루스 뭉치를 발견했습니다. 이집트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파피루스 문서로, 그 가운데 하나가 「메레르」라는 감독관이 쓴 작업 일지였습니다.
- 때: 쿠푸왕 재위 27년 무렵. 대피라미드가 거의 완성되어 겉면 마감 작업을 하던 시기로 봅니다.
- 내용: 메레르의 작업반이 투라에서 고운 석회암을 배에 싣고, 나일강과 운하를 따라 기자의 항구로 날라 간 일정이 날짜별로 적혀 있습니다. 한 번 오가는 데 며칠씩 걸렸습니다.
- 등장인물: 공사를 총괄한 사람으로 쿠푸의 이복형제이자 재상인 앙크하프가 나옵니다.
- 의미: 피라미드 공사에 관여한 사람이 직접 남긴 기록이 처음 나온 것입니다. 돌을 배로 옮겼다는 것, 국가가 조직한 작업반이 움직였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일지는 이집트 박물관에서 공개 전시된 적이 있습니다. 다만 일지는 「운반」을 다룰 뿐, 돌을 피라미드 위로 어떻게 올렸는지는 말해 주지 않습니다.
가장 큰 수수께끼: 돌을 어떻게 올렸나
평지에서 돌을 끄는 방법은 비교적 잘 알려져 있습니다. 나무 썰매에 돌을 싣고, 앞쪽 모래에 물을 부어 마찰을 줄이며 끌었다는 것이 무덤 벽화와 실험으로 뒷받침됩니다. 문제는 높이입니다. 학자들이 제시해 온 경사로 가설은 크게 다음과 같습니다.
| 가설 | 방식 | 장점 | 약점 |
|---|---|---|---|
| 직선 경사로 | 한쪽 면에 곧게 뻗은 거대한 흙·벽돌 경사로 | 구조가 단순, 낮은 단계에서는 효율적 | 꼭대기까지 올리려면 경사로 자체가 피라미드만큼 커져야 함 |
| 지그재그 경사로 | 한 면을 따라 꺾어 올라가는 경사로 | 재료가 적게 듦 | 꺾이는 곳이 좁아 큰 돌을 돌리기 어려움 |
| 나선 경사로 | 네 면을 둘러 감으며 올라가는 경사로 | 경사를 완만하게 유지 | 모서리를 가려 정확한 측량이 어려움 |
| 내부 경사로 (가설) | 프랑스 건축가 장피에르 우댕이 2007년 제안. 아래쪽은 외부 경사로, 위쪽은 피라미드 안쪽 나선형 통로로 올렸다는 주장 | 외부 구조물 없이 설명 가능 | 내부 통로가 실제로 확인되지 않음 |
실제로는 한 가지 방식이 아니라 높이와 단계에 따라 여러 방식을 섞었을 것으로 보는 학자가 많습니다. 아래쪽은 직선 경사로로 빠르게, 위로 갈수록 다른 방식으로 바꿨다는 식입니다. 지렛대로 한 단씩 들어 올렸다는 설명도 있습니다.
하트누브 채석장의 가파른 경사로 (2018년)
2018년 프랑스 동양고고학연구소와 영국 리버풀 대학교 조사단은 이집트 동부 사막의 하트누브 설화석고 채석장에서 쿠푸왕 시대로 추정되는 경사로를 보고했습니다. 가운데 경사로 양옆으로 계단이 있고, 계단을 따라 나무 기둥을 박았던 구멍이 줄지어 있었습니다. 경사가 20% 이상으로 꽤 가팔랐습니다. 조사단은 기둥에 밧줄을 감아 도르래처럼 쓰면서 썰매에 실은 돌을 끌어올렸을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대피라미드에 같은 방식이 쓰였다는 직접 증거는 아니지만, 당시 사람들이 가파른 경사로에서 무거운 돌을 올리는 기술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누가 지었나: 노예가 아니라 일꾼
오랫동안 피라미드는 노예들이 채찍을 맞으며 지었다는 이미지가 퍼져 있었습니다. 이 그림을 바꾼 것은 일꾼들의 흔적입니다.
- 일꾼 무덤: 1990년 말을 탄 관광객이 기자 남쪽에서 벽에 걸려 넘어진 것을 계기로 일꾼들의 무덤이 발견되었습니다. 이집트 고고학자 자히 하와스는 왕의 피라미드 가까이 묻힌 것 자체가 명예였다며, 노예라면 이런 매장은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 일꾼 마을: 미국 고고학자 마크 레너 연구팀은 기자 남쪽 「헤이트 엘구라브」에서 빵 굽는 곳, 숙소, 창고가 있는 대규모 마을 유적을 조사했습니다.
- 식량: 하루에 소 21마리, 양 23마리 정도가 일꾼 약 1만 명을 먹이기 위해 공급되었다는 추정이 발표되었습니다. 뼈에는 치료받고 나은 골절 흔적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숙련된 상근 장인과, 돌아가며 일하러 온 농민 노동자들이 국가의 급식과 보상을 받으며 지었다는 그림이 일반적입니다. 고대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가 적은 「10만 명」은 지나치게 부풀린 숫자로 봅니다.
사라진 나일강 지류
지금의 나일강은 기자에서 수 km 떨어져 흐릅니다. 그런데 어떻게 배로 돌을 날랐을까요? 2022년 국제 학술지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실린 연구는 기자 동쪽 범람원의 퇴적층 속 꽃가루를 분석해, 쿠푸왕 시대에 지금은 사라진 「쿠푸 지류」의 물이 높게 유지되어 배가 피라미드 가까이 닿을 수 있었다고 보고했습니다. 2024년에는 위성 레이더와 시추 조사로 기자를 포함한 피라미드 31기가 늘어선 사막 가장자리를 따라 흐르던 길이 약 64km의 옛 물길(「아흐라마트 지류」)을 찾았다는 연구가 나왔습니다. 피라미드들이 왜 지금은 메마른 사막 가장자리에 줄지어 있는지 설명해 주는 연구입니다.
밝혀진 것과 아직 모르는 것
밝혀진 것
- 몸체 돌은 바로 옆 기자 고원에서, 마감돌은 투라에서, 화강암은 아스완에서 왔다.
- 투라의 돌은 배로 강과 운하를 따라 옮겼다 (메레르의 일지).
- 쿠푸왕 시대에 가파른 경사로와 기둥·밧줄을 이용한 운반 기술이 있었다 (하트누브).
- 건설 인력은 국가가 조직하고 먹여 살린 일꾼들이었으며, 근처에 마을과 무덤을 남겼다.
- 당시에는 나일강 지류가 피라미드 가까이까지 흘렀다.
아직 모르는 것
- 돌을 꼭대기까지 올린 경사로의 정확한 형태. 경사로 자체가 남아 있지 않다.
- 정확한 건설 기간과 동원된 인원. 수천 명에서 2만~3만 명까지 추정이 다양하다.
- 내부의 빈 공간. 2017년 우주선(宇宙線) 입자를 이용한 투시 조사(스캔피라미드)로 대회랑 위쪽에 거대한 빈 공간이 있다는 결과가, 2023년에는 북쪽 입구 뒤에 길이 약 9m의 숨은 통로가 있다는 결과가 발표되었지만, 빈 공간의 용도는 모른다.
- 설계도나 공사 지침을 직접 적은 문서.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불가사의라는 말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아직 다 풀지 못한 것」에 가깝습니다. 세계 7대 불가사의 목록이 왜 여러 개인지는 세 가지 목록 편에, 세계유산 제도는 세계유산이란 편에 정리했습니다.
가늠해 보기
| 가늠 | 비교 |
|---|---|
| 원래 높이 146.6m | 63빌딩(249m)의 약 60%. 한 층 2.8m 아파트로 치면 약 52층 |
| 밑변 한 변 230m | 축구장 세로 길이(105m) 두 개를 이은 것보다 조금 더 김 |
| 돌 약 230만 개, 20년 공사 | 하루 평균 약 315개. 하루 10시간 일했다면 약 2분마다 하나씩 놓아야 함 |
| 돌 한 개 평균 2.5톤 | 중형 승용차 약 두 대 무게 |
| 아스완 화강암 운반 거리 800km 이상 | 서울~부산 도로 거리(약 400km)의 두 배 넘게 나일강을 따라 내려옴 |
| 완공 약 4,500년 전 | 고려 건국(918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의 네 배 넘게 서 있었음 |
피라미드 지대의 세계유산 지정 내용은 유네스코에서, 이집트 여행 전 안전 정보는 외교부 해외안전여행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피라미드를 노예가 지었다는 말은 틀린 건가요?
지금의 고고학 증거는 국가가 조직하고 급식과 보상을 준 일꾼들이 지었다는 쪽을 가리킵니다. 일꾼 마을과 피라미드 가까이 마련된 무덤이 근거입니다. 다만 노동이 자발적이었는지, 의무 노역이었는지는 연구자마다 해석이 다릅니다.
Q. 돌 하나를 올리는 데 얼마나 걸렸나요?
건설 기간을 20년으로 잡으면 하루 평균 약 315개, 하루 10시간 일했다면 약 2분마다 하나씩 놓아야 하는 계산입니다. 여러 경사로와 작업반이 동시에 움직였을 것으로 봅니다.
Q. 메레르의 일지는 어디서 볼 수 있나요?
일지의 일부는 카이로 이집트 박물관에서 전시된 적이 있습니다. 전시 여부와 장소는 바뀔 수 있으므로 방문 전 박물관 안내를 확인하세요.
Q. 피라미드 내부에 들어갈 수 있나요?
대피라미드 내부는 별도 입장권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경우가 많지만, 개방 여부와 인원 제한, 요금은 자주 바뀝니다. 현지 공식 안내로 확인하세요.
기준일 2026년 10월 23일
출처 Live Science 메레르의 일지 보도 · Sci.News·Archaeology 하트누브 경사로 보도 (2018년) · Sheisha 외, PNAS (2022) 쿠푸 지류 연구 · Ghoneim 외, Communications Earth & Environment (2024) 아흐라마트 지류 연구 · CBC 기자 일꾼 무덤 발굴 보도 (2010년) ·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 멤피스와 피라미드 지대
입장료·운영 시간·예약 방법은 바뀔 수 있습니다. 방문 전 공식 사이트에서 최종 확인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