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2년 4월, 네덜란드 탐험가 야코프 로헤베인의 배가 남태평양 한가운데의 작은 섬에 닿았습니다. 그날이 부활절(이스터) 일요일이어서 섬은 「이스터섬」이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선원들을 맞은 것은 해안을 따라 늘어선 거대한 돌 얼굴들이었습니다. 나무 한 그루 제대로 없는 섬에서 이 거대한 석상을 어떻게 만들고 옮겼을까? 이 질문은 300년 동안 수많은 추측을 낳았습니다. 연재 「세계의 불가사의」 여섯 번째 편은 원주민 말로 라파 누이라 불리는 이 섬의 모아이입니다.
핵심 요약
- 이스터섬(라파 누이)에는 900개가 넘는 모아이가 있으며, 대부분 섬 동쪽 라노 라라쿠 화산의 응회암을 깎아 만들었습니다.
- 모아이는 밧줄로 좌우를 번갈아 당겨 세운 채 「걷게」 해서 옮겼다는 가설이 실험과 2025년 연구로 힘을 얻고 있습니다.
- 섬 사람들이 숲을 다 베어 스스로 무너졌다는 「에코사이드」 설과 달리, 2024년 연구들은 인구가 약 3,000명 수준에서 유지되었고 큰 피해는 유럽인 접촉 이후에 왔다고 봅니다.
연재 「세계의 불가사의」 전 10편
- 1. 7대 불가사의, 세 가지 목록
- 2. 사라진 고대 7대 불가사의
- 3. 미스터리 서클
- 4. 피라미드는 어떻게 지었나
- 5. 나스카 지상화
- 6. 이스터섬 모아이 (지금 보는 글)
- 7. 스톤헨지 (공개 예정)
- 8. 버뮤다 삼각지대 (공개 예정)
- 9. 아틀란티스 (공개 예정)
- 10. 보이니치 필사본 (공개 예정)
라파 누이 한눈에 보기
| 항목 | 내용 |
|---|---|
| 소속 | 칠레. 칠레 본토에서 서쪽으로 약 3,500km |
| 면적 | 약 164㎢ (서울 면적의 약 4분의 1) |
| 사람이 처음 정착한 때 | 폴리네시아 사람들이 대략 1200년 무렵 도착한 것으로 봄 (연구에 따라 차이) |
| 세계유산 | 1995년 「라파 누이 국립공원」 |
| 모아이 수 | 900개 이상. 연구에 따라 약 900~1,000개로 셈 |
| 평균 크기 | 높이 약 4m 안팎. 세워진 것 중 가장 큰 「파로」는 약 10m, 채석장에 남은 미완성 「엘 히간테」는 약 20m로 알려짐 |
| 재료 | 라노 라라쿠 화산의 응회암 (화산재가 굳은 돌) |
| 관리 | 2017년부터 원주민 공동체 「마우 헤누아」가 국립공원을 운영 |
모아이는 어떤 돌상인가
모아이는 조상을 기리는 석상으로 이해됩니다. 대부분 바다를 등지고 마을 쪽, 즉 섬 안쪽을 바라보도록 세워졌습니다. 조상의 힘(마나)이 후손을 지켜 준다는 믿음과 관련된 것으로 봅니다.
- 라노 라라쿠 채석장: 섬 동쪽의 화산으로, 모아이 대부분이 이곳 응회암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지금도 경사면에 수백 개의 모아이가 머리만 내민 채 묻혀 있거나, 바위에서 떼어 내지 못한 미완성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얼굴만 있는 석상」이라는 오해는 몸통이 흙에 묻힌 이곳 모아이 사진에서 나왔습니다.
- 아후: 모아이를 올려 세운 돌 제단입니다. 해안을 따라 수백 개가 있으며, 가장 큰 아후 통가리키에는 모아이 15개가 나란히 서 있습니다. 1960년 쓰나미로 무너졌다가 1990년대 일본 기업의 지원으로 복원되었습니다.
- 푸카오: 일부 모아이 머리 위에 얹힌 붉은 원통입니다. 섬의 다른 곳인 푸나 파우의 붉은 화산암으로 만들었습니다. 상투처럼 틀어 올린 머리를 나타낸 것으로 봅니다. 무거운 원통을 굴려서 경사로로 올린 뒤 얹었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 눈: 아후에 세운 뒤 산호와 붉은 돌로 만든 눈을 끼웠던 것으로 보이며, 눈을 넣어야 비로소 힘을 얻는다고 여겼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어떻게 옮겼나: 걸어간 모아이
섬에는 모아이가 「스스로 걸어갔다」는 전승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신화로만 여겼지만, 지금은 이 말이 실제 운반 방법을 가리킨다고 보는 연구가 힘을 얻고 있습니다.
| 방법 | 내용 | 평가 |
|---|---|---|
| 눕혀서 썰매·통나무로 끌기 | 모아이를 눕혀 나무 썰매에 싣고 통나무 위로 굴리는 방식 | 많은 나무와 인력이 필요해 숲이 사라졌다는 설과 연결됨 |
| 세워서 「걷게」 하기 | 모아이를 세운 채 머리에 밧줄 세 가닥을 묶고, 양옆 무리가 번갈아 당겨 좌우로 흔들며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게 함 | 실험으로 재현됨. 운반 도중 넘어진 모아이의 모양, 길의 형태와도 맞음 |
2012년 미국 고고학자 테리 헌트와 칼 리포 연구팀은 높이 약 3m, 무게 약 4.35톤의 실물 크기 복제품을 만들어 18명이 밧줄로 당겨 걷게 하는 실험을 했습니다. 복제품은 약 40분 만에 100m를 나아갔습니다. 2025년 두 연구자는 모아이 962개를 분석한 논문에서, 옛 운반로 옆에 놓인 62개의 모아이가 바닥이 넓은 D자형이고 앞으로 기울어진 모양이라 걷기 운반에 맞게 다듬어졌다고 보고했습니다. 운반로의 폭은 약 4.5m이고 가운데가 오목한 모양이어서, 흔들리는 모아이가 길 밖으로 벗어나지 않게 해 주었다는 해석입니다. 아후에 도착한 뒤에는 바닥을 다시 다듬고 눈을 넣어 세웠던 것으로 봅니다.
「문명 붕괴」 이야기의 반전
이스터섬은 오랫동안 환경 파괴로 스스로 무너진 문명의 대표 사례로 소개되었습니다. 이른바 「에코사이드(생태 자살)」 설입니다. 모아이를 옮기느라 숲을 다 베었고, 숲이 사라지자 카누를 만들 수 없어 고기잡이가 끊기고, 식량이 부족해 전쟁과 식인까지 벌어지며 인구가 1만 수천 명에서 급감했다는 줄거리입니다. 2005년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책 「문명의 붕괴」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최근 연구들은 이 줄거리를 크게 수정하고 있습니다.
- 숲이 사라진 다른 이유: 폴리네시아 사람들과 함께 들어온 쥐가 야자나무 씨앗을 갉아 먹어 숲이 다시 자라지 못했다는 설명이 제시되었습니다. 숲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사람들은 바위 정원 같은 방식으로 농사법을 바꿔 적응했다는 것입니다.
- 인구는 원래 많지 않았다 (2024년):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실린 연구는 위성 영상과 인공지능으로 섬의 바위 정원 면적을 다시 계산해, 섬이 먹여 살릴 수 있는 인구가 약 3,000명 수준이었다고 추정했습니다. 1722년 유럽인이 본 인구와 비슷한 숫자로, 1만 명이 넘는 인구가 있다가 무너졌다는 시나리오와 맞지 않습니다.
- 유전자도 붕괴 흔적이 없다 (2024년): 같은 해 「네이처」에 실린 연구는 1670~1950년 사이에 살았던 원주민 15명의 유전체를 분석해, 유럽인이 오기 전 인구가 급감한 흔적이 없고 오히려 꾸준히 늘었다고 보고했습니다. 또 13~15세기 무렵 아메리카 원주민과 접촉한 흔적이 유전자에 남아 있다는 결과도 함께 내놓았습니다.
- 진짜 비극은 접촉 이후: 1860년대 페루 노예 상인들이 섬 주민 다수를 끌고 갔고, 함께 퍼진 천연두 같은 질병으로 1870년대 섬의 인구는 100여 명까지 줄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물론 학계의 논쟁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어리석게 숲을 베어 자멸한 사람들」이라는 이미지는 증거가 약하다는 쪽으로 무게가 옮겨 가고 있습니다.
섬을 떠난 모아이, 호아 하카나나이아
영국 런던의 대영박물관에는 높이 약 2.4m의 모아이 「호아 하카나나이아」가 있습니다. 1868년 영국 군함 토파즈호가 섬의 의례 장소 오롱고에서 가져갔고, 이듬해 빅토리아 여왕을 거쳐 박물관에 기증되었습니다. 대부분의 모아이와 달리 단단한 현무암으로 만들었고, 등에는 새 사람(조인) 의례와 관련된 조각이 새겨져 있습니다. 2018년 섬의 원로회와 지방 정부는 공식 서한으로 반환을 요청했고, 섬 대표단이 박물관을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문화유산 반환 문제를 이야기할 때 자주 언급되는 사례입니다.
방문 규칙
섬 대부분이 국립공원이며, 모아이와 아후를 보려면 공원 입장권이 필요합니다. 아래는 공원 운영 측과 현지 안내를 바탕으로 정리한 내용이며, 규정은 바뀔 수 있으니 방문 전 국립공원 공식 안내로 꼭 확인하세요.
- 입장권: 개인별로 발급되며 양도할 수 없습니다. 첫 검표 지점부터 일정 기간(현지 안내 기준 10일) 유효하고, 공원 안 어디서든 검사받을 수 있으니 늘 지니고 다녀야 합니다.
- 한 번만 들어가는 곳: 라노 라라쿠 채석장과 오롱고 의례 마을은 입장권 한 장에 한 번씩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 가이드 동행: 2022년 관광 재개 이후 대부분의 유적은 공인 현지 가이드와 함께 들어가야 합니다. 마을 가까운 타하이, 아나케나 해변 등 일부 구역만 예외로 알려져 있습니다.
- 금지 행동: 모아이와 아후에 올라가거나 만지는 것, 돌을 가져가는 것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아후 위는 무덤이자 성스러운 장소입니다.
- 교통: 칠레 산티아고에서 항공편으로 약 5시간 안팎 걸립니다. 운항 편수는 계절에 따라 다릅니다.
밝혀진 것과 아직 모르는 것
밝혀진 것
- 모아이 대부분은 라노 라라쿠 응회암으로, 폴리네시아계 섬 사람들이 만들었다.
- 세워서 걷게 하는 방식으로 적은 인원이 옮길 수 있다는 것이 실험으로 확인되었다.
- 유럽인이 오기 전 인구가 크게 무너졌다는 유전적 증거는 없다.
- 큰 인구 감소는 1860년대 노예 사냥과 전염병 이후에 일어났다.
아직 모르는 것
- 모든 모아이가 같은 방식으로 옮겨졌는지. 큰 모아이일수록 다른 방법이 섞였을 수 있다.
- 모아이 제작이 멈춘 정확한 이유와 시기.
- 섬 고유 문자로 알려진 「롱고롱고」의 뜻. 아직 해독되지 않았다.
다른 대륙의 불가사의는 만리장성 편과 세계 7대 불가사의 세 가지 목록 편에서 이어집니다.
가늠해 보기
| 가늠 | 비교 |
|---|---|
| 칠레 본토에서 약 3,500km | 서울~부산 도로 거리(약 400km)의 약 9배. 여객기(시속 900km)로 약 4시간 거리 |
| 섬 면적 약 164㎢ | 서울 면적(약 605㎢)의 약 4분의 1 |
| 모아이 평균 높이 약 4m | 아파트 한 층 반. 가장 큰 미완성 모아이 약 20m는 아파트 7층 |
| 걷기 실험 100m에 40분 | 시속 약 0.15km. 걸어가는 사람(시속 4km)보다 약 27배 느림 |
| 채석장에서 북쪽 해안까지 약 18km를 같은 속도로 | 쉬지 않고 약 120시간. 하루 8시간씩이면 약 보름 |
| 섬이 먹여 살릴 수 있던 인구 약 3,000명 (2024년 추정) | 예전 추정치 1만 7천 명 이상의 약 6분의 1. 1722년 유럽인이 본 인구와 비슷 |
라파 누이 국립공원의 세계유산 지정 내용은 유네스코에서, 칠레 여행 전 안전 정보는 외교부 해외안전여행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입장권과 가이드 규정은 국립공원 운영 측 공식 안내로 확인하세요.
자주 묻는 질문
Q. 모아이는 몸통 없이 얼굴만 있나요?
아닙니다. 모든 모아이에는 몸통이 있습니다. 라노 라라쿠 채석장 경사면의 모아이들이 흙에 몸통이 묻힌 채 머리만 드러나 있어 그런 오해가 생겼습니다.
Q. 모아이는 왜 바다를 등지고 있나요?
조상을 기리는 석상으로서 마을과 후손을 지켜보도록 섬 안쪽을 바라보게 세웠다고 봅니다. 다만 아후 아키비의 일곱 모아이처럼 바다 쪽을 보는 예외도 있습니다.
Q. 혼자서 렌터카로 돌아볼 수 있나요?
섬 안 이동은 렌터카로 가능하지만, 대부분의 유적 구역은 공인 가이드와 함께 들어가야 하는 규정이 있습니다. 최신 규정은 국립공원 공식 안내로 확인하세요.
Q. 이스터섬과 라파 누이는 같은 곳인가요?
같은 섬입니다. 이스터섬은 1722년 유럽인이 붙인 이름이고, 라파 누이는 원주민이 쓰는 이름입니다. 스페인어로는 이슬라 데 파스쿠아라고 부릅니다.
기준일 2026년 10월 25일
출처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 라파 누이 국립공원 · Lipo·Hunt, Journal of Archaeological Science (2025) 걷는 모아이 연구 · Davis 외, Science Advances (2024) 바위 정원과 인구 연구 · Moreno-Mayar 외, Nature (2024) 라파 누이 고대 유전체 연구 · 대영박물관 호아 하카나나이아 안내 · 라파 누이 국립공원 방문 규정 현지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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