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푸르트 공항 장거리역 승강장에 서 있으면, 흰 차체에 빨간 띠를 두른 열차가 몇 분 간격으로 들어옵니다. 앞모습이 둥근 열차, 뾰족한 열차, 유난히 긴 열차가 섞여 있습니다. 모두 같은 이름 ICE를 달고 있지만 태어난 해와 구조가 제각각입니다. 연재 「고속철 기술 비교」 다섯 번째 편은 독일 ICE입니다. 동력집중식과 동력분산식의 차이는 1편에서, 일본과 프랑스의 고속철은 신칸센 편과 TGV 편에서 다뤘습니다. 독일은 그 두 나라의 길을 차례로 모두 걸어 본 나라입니다.
핵심 요약
- ICE는 1991년 6월 영업을 시작한 독일 철도(도이체반)의 고속열차로, 첫 ICE 1은 앞뒤 동력차를 둔 동력집중식이었습니다.
- 2000년 등장한 ICE 3부터 동력분산식으로 바뀌었고, 이 설계는 지멘스 「벨라로」로 스페인·중국·러시아·튀르키예 등에 수출되었습니다.
- 1998년 6월 3일 에셰데에서 ICE 1의 고무 완충 바퀴가 피로 균열로 깨지며 101명이 숨졌고, 이후 일체형 바퀴로 교체되었습니다.
연재 「고속철 기술 비교」 전 8편
- 1. 동력집중식과 동력분산식
- 2. KTX 세대별 차량
- 3. 일본 신칸센
- 4. 프랑스 TGV
- 5. 독일 ICE (지금 보는 글)
- 6. 궤간 이야기 (공개 예정)
- 7. 신호 시스템 (공개 예정)
- 8. 자기부상열차 (공개 예정)
ICE라는 이름, 그리고 독일만의 사정
ICE는 InterCityExpress의 줄임말로, 독일 철도 도이체반(DB)이 운영하는 최상위 장거리 열차입니다. 원래 시외 급행 「인터시티(IC)」 위에 한 등급을 더 얹는다는 뜻으로 붙인 이름입니다.
독일 고속철은 일본이나 프랑스와 출발 조건이 달랐습니다. 프랑스는 파리라는 거대한 중심에서 바퀴살처럼 뻗어 나가면 되었고, 일본은 도쿄~오사카라는 압도적인 수요 축이 있었습니다. 독일은 베를린·함부르크·뮌헨·쾰른·프랑크푸르트·슈투트가르트 같은 큰 도시가 전국에 고르게 흩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고속 전용선 몇 개로 끝나지 않고, 새로 놓은 고속 구간과 기존 선로를 개량한 구간을 이어 붙이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같은 ICE라도 어떤 구간은 시속 300km로, 어떤 구간은 시속 160km로 달립니다. 초기 고속 신선 일부는 화물열차도 함께 다니도록 경사를 완만하게 하고 터널을 많이 뚫었습니다.
세대별 연표
| 시기 | 일 |
|---|---|
| 1985년 | 시험 열차 ICE-V(인터시티 익스페리멘털) 공개 |
| 1988년 5월 1일 | ICE-V가 시속 406.9km 기록. 당시 바퀴 달린 열차의 세계 최고 속도 |
| 1991년 6월 2일 | ICE 1 영업 시작. 하노버~뷔르츠부르크, 만하임~슈투트가르트 고속 신선 개통 |
| 1996~1997년 | 편성을 반으로 나눈 ICE 2 등장 |
| 1998년 6월 3일 | 에셰데 사고. ICE 884편 탈선, 101명 사망 |
| 1999년 | 곡선에서 차체를 기울이는 ICE T 등장 |
| 2000년 | 동력분산식 ICE 3 등장 (하노버 엑스포에 맞춤) |
| 2002년 | 쾰른~프랑크푸르트 고속 신선 개통, 시속 300km 영업 |
| 2007년 | ICE 3가 파리까지 직통 운행 시작 |
| 2017년 12월 | ICE 4 정기 영업 시작 |
| 2022년 12월 | ICE 3neo 영업 시작 (최고 시속 320km) |
세대마다 무엇이 달라졌나
ICE 1: 앞뒤 동력차의 긴 열차
ICE 1은 TGV처럼 열차 앞뒤에 동력차를 두고 그 사이에 객차를 넣은 동력집중식입니다. 다만 TGV와 달리 객차마다 대차를 따로 단 일반 구조여서 객차를 하나씩 빼고 넣을 수 있었습니다. 객차 수가 많아 한 편성이 350m를 훌쩍 넘을 만큼 길고, 식당차를 갖춘 넉넉한 열차였습니다. 차체가 넓게 설계되어 주로 독일과 이웃한 일부 나라에서만 달렸습니다. 최고 영업속도는 시속 280km였습니다.
ICE 2: 반으로 쪼개는 열차
ICE 2는 동력차 한 량과 객차, 그리고 반대쪽 끝에 운전실만 있는 제어객차로 된 「반쪽 편성」입니다. 수요가 많은 구간에서는 두 편성을 이어 달리다가, 갈림길이 되는 역에서 떼어 각자 다른 도시로 보내는 운행이 가능해졌습니다. 흩어진 도시를 고루 이어야 하는 독일다운 해법입니다.
ICE 3: 동력분산식으로의 전환
ICE 3는 별도의 동력차 없이 8량 편성 곳곳의 대차에 모터를 나눠 단 동력분산식입니다. 승객은 맨 앞 차량까지 탈 수 있고, 운전실 바로 뒤에 유리벽 너머로 기관사 시야가 그대로 보이는 라운지 좌석이 있어 인기가 높습니다. 여러 나라 전압과 신호에 대응하는 형식은 네덜란드·벨기에·프랑스까지 국경을 넘어 달립니다.
ICE 4: 지금의 주력
ICE 4는 2017년 말부터 투입된 차세대 주력 열차입니다. 최고 시속은 250km 안팎으로 ICE 3보다 낮지만, 대신 좌석이 많고 편성 길이를 여러 가지로 만들 수 있으며, 모터와 전력 장치를 담은 차량을 편성 중간중간에 끼워 넣는 구조를 택했습니다. 고속 신선보다 기존선 구간이 많은 독일 사정에 맞춰, 최고 속도보다 수송량과 유지비를 앞세운 선택입니다.
ICE 3neo: 시속 320km의 최신형
ICE 3neo는 지멘스의 벨라로 플랫폼을 바탕으로 한 최신형으로, 2022년 12월 영업을 시작했습니다. 최고 시속은 320km이고, 도이체반은 2020년과 2022년 두 차례에 걸쳐 모두 73편성을 주문했습니다. 한 편성 좌석은 439석입니다. 휠체어 승강 장치를 갖추고, 휴대전화 전파가 잘 통하도록 처리한 창문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독일은 왜 분산식으로 돌아섰나
ICE 3가 동력분산식을 택한 결정적인 이유는 2002년 개통한 쾰른~프랑크푸르트 고속 신선입니다. 이 선로는 건설비를 줄이려고 터널과 교량을 덜 쓰는 대신 경사를 가파르게 했는데, 가장 가파른 곳은 1km를 갈 때 40m를 오르는 40퍼밀(‰)에 이릅니다. 일반 고속선보다 훨씬 가파른 경사입니다.
무거운 동력차 두 량이 끌고 미는 열차로는 이런 경사를 시속 300km로 오르기 어렵습니다. 모터를 여러 차량에 나눠 달면 바퀴 여러 곳에서 동시에 힘을 낼 수 있어 미끄러지지 않고 가속하기 쉽고, 차량 한 대에 무거운 장비가 몰리지 않아 선로에 걸리는 무게(축중)도 고르게 낮아집니다. 동력차 자리에 승객을 태울 수 있으니 같은 길이에 좌석도 늘어납니다. 동력분산식의 일반적인 장단점은 1편에 자세히 정리했습니다.
ICE 3의 설계는 지멘스 「벨라로」라는 이름으로 세계로 퍼졌습니다. 스페인 AVE의 S-103, 중국 CRH3, 러시아 삽산, 튀르키예 고속열차, 영불해협을 건너는 유로스타 e320이 모두 벨라로 계열입니다. 신칸센이 처음 택한 분산식이 독일을 거쳐 유럽 표준이 되어 간 흐름입니다.
1998년 6월 3일, 에셰데
오전 10시 59분, 뮌헨을 떠나 하노버를 거쳐 함부르크로 가던 ICE 884편 「빌헬름 콘라트 뢴트겐」호가 니더작센주의 작은 마을 에셰데 근처를 시속 약 200km로 지나고 있었습니다. 열차는 ICE 1 편성이었습니다.
첫 번째 객차 셋째 차축 바퀴의 바깥 강철 테(타이어)가 피로 균열로 쪼개지며 바퀴에서 떨어져 나왔습니다. 떨어진 테는 객차 바닥을 뚫고 박혔고, 이를 이상하게 여긴 승객이 승무원에게 알렸지만 열차는 곧바로 서지 않았습니다. 잠시 뒤 열차가 선로 분기기를 지날 때 박혀 있던 테가 분기기의 가드레일을 끌어 올렸고, 탈선한 바퀴가 다음 분기기를 움직여 셋째 객차를 옆 선로로 틀어 버렸습니다. 그 객차가 도로 고가교의 가는 교각을 들이받으면서 약 300톤짜리 다리가 무너져 뒤따르던 객차들을 덮쳤고, 뒤쪽 객차들은 잔해에 부딪히며 접히듯 쌓였습니다.
승객과 다리 아래에서 일하던 철도 노동자 2명을 포함해 101명이 숨지고, 크게 다친 사람만 88명이 넘었습니다. 독일 철도 역사상 가장 큰 참사이자, 고속철에서 일어난 가장 심각한 사고 가운데 하나로 남았습니다. 앞쪽 동력차와 첫 두 객차는 다리를 지나간 뒤였습니다.
왜 바퀴가 깨졌나: 고무를 끼운 바퀴
ICE 1은 처음에 강철 한 덩어리로 된 일체형(모노블록) 바퀴를 썼습니다. 그런데 운행해 보니 바퀴가 닳아 둥근 모양이 조금씩 일그러지면서, 특히 식당차에서 식기가 떨릴 만큼 진동이 생겼습니다. 이를 줄이려고 도입한 것이 바퀴 몸체와 바깥 강철 테 사이에 고무층을 끼운 고무 완충 바퀴였습니다. 노면전차에서는 이미 쓰던 방식이었지만, 고속열차의 속도와 하중으로 충분히 시험하지는 않은 상태였습니다.
고무 완충 바퀴는 바퀴가 한 바퀴 돌 때마다 바깥 테가 조금씩 눌렸다 펴지기를 되풀이합니다. 바퀴가 닳아 테가 얇아질수록 이 굽힘은 커졌고, 테 안쪽에서 보이지 않는 피로 균열이 자랐습니다. 사고 조사에서는 이런 반복 굽힘을 설계 때 제대로 따지지 않았다는 점, 바퀴 점검이 손전등에 의존한 눈 검사 수준이었다는 점, 승객의 이상 신고에 열차를 바로 세우지 못한 점이 함께 지적되었습니다.
사고 뒤 바뀐 것들
- 바퀴: 같은 설계의 고무 완충 바퀴는 사고 몇 주 만에 모두 일체형 바퀴로 바뀌었습니다. 진동은 바퀴를 더 자주 깎아 둥근 모양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다스렸습니다.
- 분기기와 구조물: 전국 선로에서 다리 교각 같은 장애물 가까이 놓인 분기기를 점검했습니다. 무너진 다리는 교각 없이 버티는 형태로 다시 지었습니다.
- 창문: 구조대가 객차 창문을 깨고 들어가기 어려웠던 경험에서, 비상시 깨기 쉬운 창문으로 바꿨습니다.
에셰데의 교훈은 「승차감을 위해 바꾼 부품도 안전 부품」이라는 것입니다. 진동을 줄이려는 좋은 뜻의 변경이 고속에서 검증되지 않은 위험을 들여왔습니다. 사고 현장에는 희생자 수와 같은 101그루의 벚나무를 심은 추모 공간이 2001년 문을 열었습니다.
빠른 구간과 느린 구간이 섞인 고속철
기존선과 섞여 달리는 구조는 독일 고속철의 장점이자 약점입니다. 고속 신선을 새로 놓지 않아도 많은 도시에 ICE가 들어갈 수 있지만, 화물열차·지역열차와 선로를 나눠 쓰다 보니 한 곳의 지연이 전국으로 번지기 쉽습니다. 도이체반 장거리 열차의 정시율은 최근 몇 년 동안 60%대 안팎에 머물러, 독일 안에서도 자주 비판받습니다. 독일 정부와 도이체반은 낡은 구간을 몇 달씩 막고 한꺼번에 고치는 대규모 선로 개량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사업이 끝나기 전까지 ICE를 탄다면 일정에 여유를 두는 편이 좋습니다.
독일에서 ICE를 탄다면
- 할인 승차권(슈파프라이스)은 정해진 열차만 탈 수 있고, 일반 운임 승차권은 같은 날 다른 열차도 탈 수 있습니다. 좌석 지정은 따로 신청하는 방식입니다.
- 승강장에는 A·B·C처럼 구역 표시가 있고, 열차가 몇 번 객차를 어느 구역에 세우는지 안내판에 나옵니다. 긴 편성에서는 미리 구역을 확인해 두면 편합니다.
- ICE 2처럼 두 편성을 이어 달리다 중간에 나뉘는 열차가 있으니, 내 객차가 어느 도시로 가는 쪽인지 확인하세요.
- ICE 3를 탄다면 맨 앞이나 맨 뒤 라운지 좌석을 노려 볼 만합니다. 유리벽 너머로 선로가 다가오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열차 바퀴 사이의 간격, 철도의 궤간 이야기를 다룹니다.
가늠해 보기
| 가늠 | 비교 |
|---|---|
| ICE-V 시속 406.9km (1988년) | 1초에 약 113m. 축구장 길이(105m)를 1초 안에 지남 |
| ICE 3neo 최고 시속 320km | 1초에 약 89m. 서울~부산 직선거리(약 325km)를 쉬지 않고 달리면 약 61분 |
| 에셰데 사고 때 시속 약 200km | 1초에 약 56m. 아파트 19층 높이(한 층 약 2.9m)만큼을 1초에 달림 |
| ICE 3neo 73편성 × 439석 | 약 3만 2천 석. 45인승 고속버스 약 710대분 |
| 쾰른~프랑크푸르트 선 최대 경사 40‰ | 1km를 가는 동안 40m, 아파트 약 14층 높이를 오름 |
ICE의 운행과 승차권은 도이체반 공식 사이트에서, ICE 3·ICE 3neo의 제작 정보는 지멘스 모빌리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도이체반 공식 사이트 (독일 철도) → 도이체반 승차권·운행 정보 (bahn.de) → 지멘스 모빌리티 (ICE 3·3neo 제작사) →
자주 묻는 질문
Q. ICE는 동력집중식인가요, 동력분산식인가요?
세대마다 다릅니다. ICE 1과 ICE 2는 동력차를 둔 동력집중식이고, 2000년 ICE 3부터 동력분산식입니다. ICE 4는 모터를 단 차량을 편성 중간중간에 넣는 방식이고, 최신 ICE 3neo는 분산식입니다.
Q. ICE의 최고 속도는 얼마인가요?
영업 최고 속도는 ICE 3와 ICE 3neo의 시속 300~320km입니다. 시험 기록으로는 1988년 ICE-V가 시속 406.9km를 냈습니다. 다만 기존선 구간이 많아 노선 전체 평균 속도는 이보다 훨씬 낮습니다.
Q. 에셰데 사고의 원인은 무엇이었나요?
ICE 1의 고무 완충 바퀴 바깥 강철 테가 반복 굽힘으로 생긴 피로 균열 때문에 깨졌고, 떨어진 테가 분기기를 건드려 객차가 고가교 교각에 부딪혔습니다. 다리가 무너지며 101명이 숨졌습니다.
Q. 지금 ICE 바퀴는 안전한가요?
사고 뒤 고무 완충 바퀴는 몇 주 만에 모두 일체형 바퀴로 바뀌었고, 바퀴 점검 기준도 강화되었습니다. 고무 완충 바퀴는 독일 고속열차에서 쓰지 않습니다.
Q. KTX와 ICE는 관계가 있나요?
직접적인 관계는 없습니다. 첫 KTX는 프랑스 TGV 기술을 바탕으로 했습니다. 다만 KTX-이음·KTX-청룡처럼 우리나라도 동력분산식으로 옮겨 가는 흐름은 독일과 닮았습니다.
기준일 2026년 10월 27일
출처 위키백과(영문) 「Eschede train disaster」 (시각·사망자·원인·사고 뒤 조치) · Railway News 「Deutsche Bahn orders 43 new ICE trains」 (ICE 3neo 누적 73편성, 439석, 시속 320km) · The Local 「ICE 3neo makes first trip in Germany」 (2022년 12월 영업 시작) · 위키백과(영문) 「Intercity Express」 (세대별 연표, ICE-V 기록, 쾰른~프랑크푸르트 선) · 도이체반 공식 사이트
운행 열차와 시간표는 바뀔 수 있습니다. 이용 전 운영사 안내를 확인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