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톤헨지 미스터리: 누가, 언제, 어떻게 세웠나 (건설 단계 연표, 사르센과 블루스톤, 스코틀랜드에서 온 제단석, 하지 일출의 비밀)

영국 남부 솔즈베리 평원의 완만한 초원 위에 회색 돌기둥이 둥글게 서 있습니다. 기둥 두 개 위에 또 하나의 돌을 가로로 얹은 모습이 멀리서 보면 거대한 문처럼 보입니다. 바퀴도 쇠 연장도 없던 시대에 수십 톤짜리 돌을 어떻게 세웠는지, 왜 하필 이곳이었는지, 무엇에 쓰였는지는 수백 년 동안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했습니다. 연재 「세계의 불가사의」 일곱 번째 편은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선사 유적 스톤헨지입니다. 이번 편은 「언제 무엇이 세워졌나」를 연표로 따라가며 이야기를 풀어 보겠습니다.

핵심 요약

  • 스톤헨지는 한 번에 지은 것이 아니라 기원전 3000년 무렵의 원형 도랑에서 시작해 약 1,500년 동안 여러 차례 고쳐 지은 유적입니다.
  • 큰 돌 사르센은 약 25km 떨어진 곳에서, 작은 블루스톤은 웨일스 프레셀리 언덕에서 왔고, 가운데 제단석은 2024년 연구로 750km 넘게 떨어진 스코틀랜드 북동부산으로 밝혀졌습니다.
  • 돌의 축은 하지 해 뜨는 방향과 동지 해 지는 방향에 맞춰져 있어, 계절을 기리는 의례 장소였다는 해석이 가장 널리 받아들여집니다.

연재 「세계의 불가사의」 전 10편

  1. 1. 7대 불가사의, 세 가지 목록
  2. 2. 사라진 고대 7대 불가사의
  3. 3. 미스터리 서클
  4. 4. 피라미드는 어떻게 지었나
  5. 5. 나스카 지상화
  6. 6. 이스터섬 모아이
  7. 7. 스톤헨지 (지금 보는 글)
  8. 8. 버뮤다 삼각지대 (공개 예정)
  9. 9. 아틀란티스 (공개 예정)
  10. 10. 보이니치 필사본 (공개 예정)

먼저 알아 둘 것: 스톤헨지는 「한 번에」 지은 것이 아니다

스톤헨지에 대한 가장 흔한 오해는 어느 한 시대 사람들이 한꺼번에 세웠다는 생각입니다. 영국의 유적 관리 기관 잉글리시 헤리티지는 이 유적을 여러 단계에 걸쳐 만들고 고친 기념물로 설명합니다. 처음 땅을 판 때부터 마지막으로 손을 댄 때까지 대략 1,500년이 흐릅니다. 조선 왕조 500년의 세 배에 이르는 시간입니다. 그동안 이 일대에 살던 사람들의 생활 방식도, 장례 풍습도 바뀌었습니다. 그러니 「스톤헨지를 지은 사람들」은 한 집단이 아니라 여러 세대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연표로 보는 스톤헨지

시기 (대략) 무슨 일이 있었나
기원전 8500~7000년 중석기 시대. 지금의 주차장 자리 근처에 큰 소나무 기둥들을 세운 구덩이가 있음. 훗날의 돌 유적과 어떤 관계인지는 모름
기원전 3500년 무렵 신석기 초기. 주변에 「커서스」라 불리는 긴 도랑 구조물과 긴 무덤(롱 배로)들이 생김. 이 땅이 이미 특별한 장소였음을 보여 줌
기원전 3000년 무렵 지름 약 100m의 둥근 도랑과 둑을 만듦. 이것이 「헨지」의 시작. 둑 안쪽으로 「오브리 구멍」 56개를 팜
기원전 3000년 이후 오브리 구멍 등에서 화장한 뼈가 나옴. 스톤헨지는 한동안 영국에서 가장 큰 화장 묘지 가운데 하나였던 것으로 봄
기원전 2500년 무렵 큰 사르센 돌로 바깥 원과 안쪽 말굽 모양(트릴리톤 다섯 쌍)을 세움. 작은 블루스톤을 그 사이에 배치
그로부터 200~300년 뒤 가운데 블루스톤을 원과 타원, 나중에는 말굽 모양으로 다시 배치. 비슷한 시기에 에이번강까지 이어지는 둑길 「애비뉴」를 만듦
기원전 1800~1500년 바깥에 두 겹의 구덩이(Y 구멍, Z 구멍)를 팜. 돌을 다시 옮기려다 끝내지 못한 흔적일 수 있음

연대는 구덩이에서 나온 사슴뿔 곡괭이, 뼈, 숯 같은 유기물의 방사성탄소 연대로 정합니다. 연구가 쌓일 때마다 수십 년, 많게는 백 년 단위로 조정되므로 표의 숫자는 「무렵」으로 읽는 것이 좋습니다. 이 시간대를 감으로 잡아 보면, 기원전 2500년 무렵은 이집트 기자에서 대피라미드가 완공된 시기(기원전 2560년 무렵)와 거의 겹칩니다. 피라미드를 어떻게 쌓았는지는 피라미드 건설 편에 정리했습니다.

돌은 두 종류다: 사르센과 블루스톤

스톤헨지를 위에서 본 모습 (모식도)하지 해 뜨는 방향(북동쪽, 애비뉴 방향)동지 해 지는 방향은 정반대(남서쪽)도랑과 둑 (약 기원전 3000년)오브리 구멍 56개사르센 바깥 원 (약 2500년)트릴리톤 5개 (말굽 모양)블루스톤 (웨일스산)돌 개수·간격은 실제와 다름
스톤헨지 평면과 하지 일출 축 (퀘스트피아 직접 작성 모식도)

스톤헨지를 이루는 돌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크기도, 출신도, 운반의 어려움도 전혀 다릅니다.

사르센: 근처에서 온 거인

사르센은 사암의 일종으로, 이 일대 언덕에 흩어져 있던 단단한 돌입니다. 바깥 원의 기둥과 그 위에 얹은 가로돌, 가운데 말굽 모양의 트릴리톤이 모두 사르센입니다. 큰 것은 한 개가 20~30톤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가장 높은 트릴리톤은 땅 위로 7m가 넘습니다. 2020년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실린 연구는 사르센 대부분의 화학 성분을 비교해, 북쪽으로 약 25km 떨어진 「웨스트 우즈」 일대에서 왔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돌을 다듬은 솜씨입니다. 가로돌과 기둥은 나무 건축에서 쓰는 장부맞춤처럼 돌기와 홈을 깎아 끼웠고, 바깥 원의 가로돌은 둥근 원을 따라 살짝 휘어지게 다듬었습니다. 기둥도 위로 갈수록 조금 넓어지게 깎아, 아래에서 올려다볼 때 곧게 보이도록 했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목수의 기술을 돌에 옮긴 셈입니다.

블루스톤: 웨일스 산골에서 온 작은 돌

블루스톤은 사르센보다 훨씬 작습니다. 한 개 무게는 대략 2~5톤으로 소개됩니다. 깨진 면이 푸르스름해 이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지질학 연구로 이 돌들 상당수가 웨일스 서남부 프레셀리 언덕 일대의 바위와 같다는 것이 확인되었고, 특정 노두(바위가 드러난 곳)에서 채석 흔적도 발견되었습니다. 스톤헨지까지는 직선으로 약 225km입니다.

왜 굳이 먼 곳의 돌을 가져왔을까요? 확인된 답은 없습니다. 프레셀리 언덕이 조상과 관련된 성스러운 장소였기 때문이라는 해석, 웨일스에 먼저 세워졌던 돌 원을 통째로 옮겨 왔다는 가설(웨일스의 「와운 마운」 유적과 연결하는 연구)이 있습니다. 블루스톤이 빙하에 실려 저절로 왔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채석장 흔적이 확인되면서 사람이 옮겼다는 쪽이 정설입니다.

2024년의 반전: 스코틀랜드에서 온 제단석

스톤헨지 한가운데에는 길이 약 5m의 납작한 돌이 쓰러진 채 놓여 있습니다. 17세기 무렵부터 「제단석」이라 불렸지만, 실제로 제단이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이 돌은 오랫동안 블루스톤의 하나로 분류되어 웨일스에서 왔다고 여겨졌습니다.

2024년 8월, 오스트레일리아 커틴대학교의 앤서니 클라크 연구팀은 학술지 「네이처」에 이 생각을 뒤집는 논문을 냈습니다. 제단석 조각 속 지르콘 같은 광물 알갱이의 나이와 성분을 분석해 보니, 웨일스가 아니라 스코틀랜드 북동부 「오카디아 분지」의 붉은 사암과 일치했습니다. 스톤헨지까지 최소 750km입니다. 무게는 약 6톤으로 추정됩니다.

정확히 어느 지점에서 캐냈는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이후 같은 분지 안에서도 오크니 본섬은 아니라는 후속 분석이 나와, 후보지를 좁히는 작업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옮겼는지도 미해결입니다. 스코틀랜드 고지대를 육로로 넘기보다 배로 해안을 따라 옮겼을 가능성이 거론되지만 어디까지나 가설입니다. 분명한 것은 신석기 시대 브리튼섬의 사람들이 생각보다 훨씬 먼 거리를 오가며 협력했다는 사실입니다.

해와 맞춘 축: 하지와 동지

스톤헨지의 돌 배치는 한 줄의 축을 따릅니다. 북동쪽으로 열린 말굽과 애비뉴는 하지(6월 21일 무렵) 해가 떠오르는 방향을 향하고, 정반대 남서쪽은 동지(12월 21일 무렵) 해가 지는 방향입니다. 하지 아침, 유적 바깥의 「힐 스톤」 근처에서 해가 솟는 장면은 이 유적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스톤헨지는 정밀한 천문대였을까요? 여기서 주장을 나눠 볼 필요가 있습니다.

  • 널리 받아들여지는 것: 축이 하지 일출·동지 일몰과 맞는다는 점. 근처 유적 「더링턴 월스」에서 돼지 뼈를 분석한 결과 많은 돼지가 한겨울에 도살된 것으로 나타나, 동지 무렵 큰 잔치가 열렸다는 해석이 힘을 얻었습니다.
  • 논쟁 중인 것: 1960년대 천문학자 제럴드 호킨스는 스톤헨지가 일식과 월식까지 예측하는 「계산기」였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정렬은 우연히도 맞출 수 있는 수준이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 근거가 약한 것: 돌이 1년 날짜를 하루 단위로 세는 달력이었다는 주장도 나왔지만, 고고학계에서는 해석이 지나치다는 반론이 많습니다.

스톤헨지를 둘러싼 가설들

가설 내용 지금의 평가
드루이드 신전 17~18세기 골동품 연구가들이 켈트 사제 드루이드가 세웠다고 주장 드루이드는 스톤헨지보다 2,000년 가까이 뒤에 등장. 근거 없음
조상의 장소 나무 원(더링턴 월스)은 산 자, 돌 원(스톤헨지)은 죽은 자를 위한 곳이었다는 해석 화장 뼈 출토 등과 맞아 유력한 해석 중 하나
치유의 장소 블루스톤에 병을 고치는 힘이 있다고 믿어 사람들이 찾아왔다는 가설 근처 무덤에서 먼 곳 출신 사람과 부상자가 나와 제기됨. 증거는 정황 수준
통합의 상징 웨일스·스코틀랜드 등 먼 지역의 돌을 모아 브리튼섬 공동체의 결속을 보여 줬다는 해석 2024년 제단석 연구 이후 다시 주목받음
마법사 멀린이 옮김 12세기 제프리 오브 몬머스의 역사서에 나오는 전설 전설. 다만 「돌이 서쪽에서 왔다」는 대목이 흥미롭게도 블루스톤의 출신과 겹침

외계인이 세웠다는 이야기도 종종 나오지만, 채석 흔적, 사슴뿔 곡괭이, 다듬다 버린 돌 조각, 운반로 연구가 사람의 작업임을 보여 줍니다. 비슷한 오해가 붙은 다른 유적은 나스카 지상화 편과 미스터리 서클 편에서도 다뤘습니다.

어떻게 옮기고 세웠나

사르센을 옮긴 방법은 실험 고고학으로 여러 차례 시험되었습니다. 나무 썰매에 돌을 싣고 통나무 레일 위로 밧줄로 끄는 방식이 대표적입니다. 2016년 영국의 한 대학 실험에서는 1톤짜리 돌을 실은 썰매를 10명 남짓이 비교적 쉽게 끌었다고 보고되었습니다. 세울 때는 구덩이 한쪽을 비스듬히 파 돌을 미끄러뜨려 넣고, 나무 틀과 밧줄로 일으켜 세운 뒤 흙과 돌로 다졌다고 봅니다. 가로돌은 나무 받침을 층층이 쌓아 조금씩 들어 올렸다는 설명이 일반적입니다. 어느 방법이든 수백 명이 계절마다 모여 일할 수 있는 조직이 필요했습니다.

직접 보러 간다면

  • 위치: 잉글랜드 남부 윌트셔. 런던에서 서남쪽으로 약 140km, 자동차로 2시간 안팎입니다. 가까운 도시 솔즈베리에서 관광 버스가 다닙니다.
  • 관리와 입장: 잉글리시 헤리티지가 운영합니다. 방문자 센터에서 셔틀을 타고 돌 원 근처까지 갑니다. 날짜·시간 지정 예매를 권장하며, 요금과 운영 시간은 공식 사이트에서 확인하세요.
  • 가까이 갈 수 있나: 평소에는 돌 원 바깥에 낸 길을 따라 둘러봅니다. 돌을 만지거나 원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일부 특별 관람 프로그램을 빼고는 허용되지 않습니다.
  • 하지·동지 개방: 하지와 동지 무렵에는 관리 기관이 돌 원 안까지 개방하는 행사를 여는 해가 많습니다. 수천 명이 모이므로 공지되는 조건을 꼭 확인하세요.
  • 함께 볼 곳: 세계유산 「스톤헨지, 에이브버리와 관련 유적」은 1986년 등재되었습니다. 북쪽으로 약 40km 떨어진 에이브버리에는 마을이 통째로 들어앉은 더 큰 돌 원이 있고, 근처의 실버리 힐은 유럽에서 가장 큰 선사 시대 인공 언덕으로 꼽힙니다.
  • 안전: 영국 여행 전에는 외교부 해외안전여행 사이트에서 최신 안내를 확인하세요.

다음 편 예고

스톤헨지가 「사람이 만든 수수께끼」라면, 다음 편은 「사람들이 만들어 낸 수수께끼」입니다. 연재 여덟 번째 편 「버뮤다 삼각지대의 진실」에서는 배와 비행기가 사라진다는 바다의 전설이 언제, 누구의 글에서 시작되었는지, 그리고 미국 해양 당국은 무엇이라고 답하는지 따라가 봅니다.

가늠해 보기

가늠 비교
둥근 도랑 지름 약 100m 축구장 세로 길이(105m)와 거의 같음. 돌 원은 그 안 가운데에 작게 자리함
가장 높은 트릴리톤 땅 위 7m 남짓 한 층 2.8m 아파트로 치면 2층 반 높이
큰 사르센 한 개 20~30톤 중형 승용차(약 1.5톤) 13~20대 무게
사르센 산지 웨스트 우즈까지 약 25km 걸어서(시속 4km) 약 6시간. 돌을 끌고 가면 수일~수주
블루스톤 산지 프레셀리까지 직선 약 225km 서울~대전(약 140km)보다 훨씬 먼 거리. 서울~광주 직선 거리(약 270km)에 조금 못 미침
제단석 산지까지 최소 750km 서울~부산 도로 거리(약 400km)의 두 배 가까이. KTX(시속 300km)로 쉬지 않고 2시간 반
큰 돌을 세운 지 약 4,500년 고구려 건국(기원전 37년)까지 거슬러 가는 시간의 두 배 이상

세계유산 등재 내용은 유네스코에서, 관람 예매·운영 시간·하지 개방 안내는 잉글리시 헤리티지 공식 사이트에서, 영국 여행 안전 정보는 외교부에서 확인하세요.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 스톤헨지, 에이브버리와 관련 유적 → 잉글리시 헤리티지: 스톤헨지 → 해외안전여행 (외교부) →

자주 묻는 질문

Q. 스톤헨지는 몇 년 전에 만들어졌나요?

처음 원형 도랑을 판 것은 약 5,000년 전(기원전 3000년 무렵), 큰 돌을 세운 것은 약 4,500년 전(기원전 2500년 무렵)입니다. 이후에도 수백 년 동안 돌의 배치를 고쳤습니다.

Q. 스톤헨지 돌은 모두 같은 곳에서 왔나요?

아닙니다. 큰 사르센은 북쪽 약 25km의 웨스트 우즈 일대, 작은 블루스톤은 웨일스 프레셀리 언덕, 가운데 제단석은 2024년 연구로 스코틀랜드 북동부에서 온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Q. 드루이드가 스톤헨지를 지었나요?

아닙니다. 드루이드는 철기 시대 켈트 사회의 사제로, 스톤헨지의 큰 돌이 세워진 뒤 2,000년 가까이 지나서야 기록에 등장합니다. 18세기에 퍼진 잘못된 연결입니다.

Q. 하지에 스톤헨지에 가면 해가 돌 사이로 뜨나요?

하지 무렵 해는 유적의 북동쪽 축 방향, 힐 스톤 근처에서 떠오릅니다. 다만 날씨와 서는 위치에 따라 보이는 모습이 다르고, 축은 동지 일몰과도 맞습니다.

Q. 돌을 만질 수 있나요?

일반 관람에서는 돌 원 바깥 길로만 둘러볼 수 있고 만질 수 없습니다. 일부 특별 관람이나 하지·동지 개방 행사 때만 원 안에 들어갈 수 있으니 잉글리시 헤리티지 공지를 확인하세요.

Q. 스톤헨지는 무엇에 쓰였나요?

확정된 답은 없습니다. 화장 묘지, 조상을 기리는 장소, 하지·동지 의례 장소였다는 해석이 증거와 가장 잘 맞습니다. 시기마다 쓰임새가 달랐을 가능성도 큽니다.